올 것이 왔다. 터질 것이 터졌다. 서울 용산 국제업무지구 개발사업 채무 불이행 사태(디폴트)를 언론은 ‘용산춘몽’ ‘사상누각’ ‘용산신기루’라고 표현했다. 허황된 꿈이 산산조각 나게 된 허망함의 묘사다. 아직 최종부도 사태가 아니어서 속단은 이르다지만, 계획대로 사업이 추진될 수 없는 것만은 분명해 보인다. 바닥을 기는 부동산 경기와 침체의 늪에 빠진 경제여건으로 보아 기사회생을 기대하기는 어렵다.

디폴트의 원인은 사업 시행사(드림허브 프로젝트금융투자)가 자산을 담보로 발행한 어음 이자 52억원을 막지 못한 것이다. 13일이 만기였던 어음 2000억원의 이자인데, 속속 만기가 다가오는 1조원 이상의 어음 이자를 갚을 길이 없어 시행사는 사실상 도산 상태에 빠졌다. 채권자들이 상환기간을 3개월 정도 연장해 준다지만, 단기간에 그 많은 돈을 갚을 여력이 없는 것으로 평가되기 때문이다.

 

‘프로젝트 파이낸싱 부동산개발사업’에도 암운
용산 사업은 ‘단군 이래 최대의 개발’ 사업이라 불려 왔다. 4대강 사업비보다 10조 이상 많은 31조 원이 투입된다는 사업규모가 그 자랑이었다. 하늘을 찌르는 초고층 빌딩 숲에 호화로운 호텔 백화점 오피스빌딩 같은 상업시설과 주거시설이 어우러진 ‘꿈의 도시’를 만들겠다고 했다. 처음부터 무리해 보였지만, 도심에서 가깝고 한강을 끼고 있는 뛰어난 입지조건 때문에 각광을 받은 것도 사실이다.

문제는 원하지 않는 주민들이 얽혀들어 억울한 손해와 고통을 떠안게 된 점이다. 코레일은 2006년 8월 용산역 구내 철도정비창 땅(44만2000평방m)을 공영개발 방식으로 개발해KTX 사업으로 떠안은 4조5000억원의 빚을 청산할 계획을 세웠다. 여기에 서울시가 끼어들어 사업규모가 커지고 무지개 빛이 채색되었다.

2007년 오세훈 당시 시장이 한강르네상스 사업과 연계하겠다며 서부이촌동 3개 아파트 단지를 끌어들여 사업 규모가 커졌다. 한강변에 있는 낡은 아파트촌에 ‘분칠’을 하고 싶었던 것이다. 민간사업이라도 타당성을 따져 피해를 막을 책임이 있는 자치단체가 헛바람을 넣어 일이 이 지경에 이르렀다. 책임소재를 엄격히 물어 국민에게 보고해야 할 이유다.

당시 대다수 주민은 사업 참여에 반대했다. 추가부담도 버겁고, 살던 집을 비워 주고 오래 전세살이 할 일이 귀찮기도 했다. 서울시의 개입으로 통합개발이 결정된 이후 발생한 미국 금융위기 파도가 한국경제를 덮쳤다. 부동산 거품이 꺼지기 시작하자 사업성에 빨간불이 켜졌다. 천문학적인 사업비 조달이 어려워지고, 사업 참여자 사이에 자중지란이 일어났다.

보상을 받지 못 한 주민들은 이중삼중의 피해에 허덕이게 되었다. 50% 이상의 주민이 새 주거지 마련 등으로 가구당 평균 3억4000만원의 빚을 졌다고 한다. 사업구역 밖의 주민들도 마찬가지다. 6년이 넘도록 땅과 집을 사지도 팔지도 못하게 되어 빚만 쌓여 간다는 것이다.

 

개발 원치않던 주민들 얽혀들어 억울한 고통 떠안아
사정이 이렇게 급박한데도 원천적 책임이 있는 정부와 서울시는 난 모른다는 얼굴이다. 다급해진 국토해양부가 부도 전날 정부 대책회의를 소집했으나 재정부는 회의에 참석하지 않았다고 한다. 코레일의 사업지분이 50%를 넘지 않기 때문에 정부가 개입할 일이 아니라는 이유였다.

사업 기획과 주관이 공기업이고, 최대 주주도 공기업인데, 사업시행사가 공공기관이 아니라서 책임이 없다니, 국민에게 정부는 무엇 하는 곳인지 묻지 않을 수 없다. 더구나 지방자체단체는 원하지 않는 주민들을 억지로 끌어들인 책임까지 있다.

머리를 싸매고 사태 수습에 골몰하는 모습을 보여도 미흡할 판에, 강 건너 불구경 하듯 하는 정부의 태도는 약삭빠른 장사꾼으로 비쳐질 뿐이다. 정부가 왜 있는지, 무슨 일을 하는 곳인지, 근본을 돌아보기 바란다.

 

내일신문  문/창/재 논설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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