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빛 비늘 휘날리며 뼈대 있는 가문(?)을 자랑하다

 
미명의 새벽, 배들이 항구를 빠져나간다. 저만치서 배웅하는 빨간 등대를 뒤로하고 내달리면 만경창파가 눈앞이라. 이리 저리 몰려다니며 군무를 연출하는 물고기 떼를 쫓아 만선의 깃발 휘날리며 돌아오니 대변항이 바로 저기렷다. 글·사진 이동미(여행 작가)
부산의 대변항, 대변이라… 지도를 펼치고 드는 생각, ‘많은 이름 중에 하필이면 대변일까?’ 지도 위의 지명을 보면서 피식 웃음이 난다. 그러면서도 호기심이 동하고, 그곳에 가면 냄새(?)가 나지 않을까  엉뚱한 상상을 하게 한다. 

대변항은 부산의 오른쪽 옆구리에 위치한 아담한 항이다. 위로는 일광해수욕장이 있고 아래로는 송정해수욕장이 있으며, 그 가운데 볼록 튀어나오고 오목 들어간 곳이 바로 대변항이다.
대변항에 다다르니 입구 왼쪽 대변초등학교에서는 축구 경기가 한창이고 돌아서 들어가니 대변 식당가, 대변 회 센터가 이어진다. 행정구역으로 부산광역시 기장군 대변리에 속하니 여기는 온통 대변 천지다. 나중에 돌아와 한자를 찾아보니 큰 대(大), 가장자리 변(邊)으로 ‘가장자리가 큰 항구’라는 뜻이다.

대변항에서 멸치를 만나다
차에서 내리니 이름에서 연상되는 냄새는 없다. 짭짤한 갯내와 비릿한 항구 내음이 바람결에 온몸을 휘감는다. 시도 때도 없이 들고 나는 갯배들. 그 속에 왁자한 세상이 있고 펄펄 뛰는 활력이 느껴진다. 대변항에 온 것은 멸치 때문. 기장군 대변항은 봄이면 멸치 털이가 장관이니 대한민국 봄철 명장면 중 하나가 펼쳐지는 곳이다. 그리고 그곳에 온몸을 흥분시키는 노랫가락이 있다. ‘얼씨구 좋을씨구~ ’ 그러다 힘이 달리면 ‘으싸 으이싸~’ 그도 아니면 ‘어기영차~’
비옷에 모자와 장화, 고무장갑으로 무장한 어부들이 일정한 가락에 맞춰 그물을 터니 거짓말 조금 보태 삼치만 한 멸치들이 허공으로 튕겨 오른다. 은빛 비늘 휘날리며 떨어지는 멸치를 삽으로 떠서 플라스틱 상자에 담고,  바닥에 떨어진 멸치들을 잽싸게 주워 담는 아낙네들…. 동네잔치에 빠질 수 없는 갈매기들이 모여드니 대변항은 그야말로 시끌벅적 멸치 잔치 중이다.

 
멸치의 재발견!
그도 그럴 것이 이곳 대변항은 전국 멸치 어획고의 60%를 차지하는 곳. 방금 잡아 머리와 꼬리까지 제대로 붙은 신선한 멸치는 10~15cm에 이르니 정말로 삼치만 하다. 생선처럼 포를 뜨면 보들보들 멸치회가 된다. 참기름 조금 넣고 무친 멸치회는 생각보다 부드러워 깜짝 놀라니 일찍이 맛보지 못한 경이로운 세계다. 비리지도 않다.
 

또 각종 채소와 양념을 넣어 새콤 달콤 매콤하게 무치면 그 이름도 유명한 ‘대변항 멸치회’가 된다. 더 잘생긴 놈들은 고등어나 참치처럼 석쇠에 얹어 구우니 바짝 마른 멸치만 보던 사람들에게는 이해하기 힘든 상황이다. 이도 저도 아닌 놈들은 팔짝팔짝 뛸 때 천일염과 혼합해 젓갈용으로 사용하니 대변항에 들어서면 마른 멸치와 멸치젓을 파는 건멸치골목이 펼쳐지며, 안쪽으로 깊숙이 들어가면 방금 잡은 멸치와 그 멸치를 즉석에서 젓갈로 담아주는 생멸치골목이 이어진다. 이곳 대변항은 멸치에 관한 모든 것이 있는 ‘멸치왕국’이자, 멸치에 대한 재발견이 이루어지는 곳이다.
뼈대 있는 가문의 자손, 멸치
 

사람의 등뼈가 26개지만 멸치는 그보다 많은 44~47개로 멸치 또한 뼈대 있는 가문의 후손인 것을… 하여 소금과 맥없이 섞여  젓갈로 사라질지라도 멸치가 뼈대 있는 가문의 자손이라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한다.
이제 대변항 아지매들의 손에 이끌려 ‘용이 되고팠던 꿈’을 접고 ‘칼슘왕’이 되어 사람들의 입으로 들어간다. 칼슘뿐만 아니라 오메가3 지방산, 철분, 인, 단백질, 타우린 등 기능성 물질을 잔뜩 함유하고  사람들의 입을 즐겁게 해준 뒤 인간의 몸 구석구석을 돌며 뼈를 튼튼히 하고 혈전을 예방해 혈압을 낮추고 심장근육도 강화해주며 건강을 지켜주니 멸치는 멸(滅)하고 사람을 ‘용’으로 만들며 자신의 꿈을 대신한다.  하루 종일 멸치를 보다 대변항이 한눈에 보이는 숙소에서 항구를 내려다본다. 멸치와 조우를 떠올리며 ‘멸치 예찬’을 읊조려본다.

그러다 통유리 너머로 동그란 항구가 반짝반짝 불을 밝히는 모습을 보며 잠자리에 든다. 꿈속에서 멸치가 되어 밤새 동해를 누비다 잠이 깬다. 희부옇게 동이 터오는 새벽, 출어는 배들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어둑새벽을 가른다. 일출의 장관과 아담한 붉은 등대 그리고 눈에 시린 듯 푸른 바다와 하늘이 펼쳐지는 경이로움 가득한 대변항이다. 

Travel Info
대변항 가는 방법 경부고속도로 구서 IC로나가 기장 방면 14번 국도를 이용하면 대변항에 닿는다.
대변항 멸치 축제 해마다 4~5월에 대변항 멸치 축제가 열린다. 그물에 매달린 멸치를 털어내는 진풍경과 멸치회, 멸치구이 등을 먹고 방금 담그는 멸치젓갈을 구입할 수 있다. 올해는 5월 2~5일 대변항에서 17회 기장멸치축제(http://tour.gijang.go.kr/festmyeolchis)가 열린다. 
맛집 대변항에 있는 ‘파도횟집’(051-721-3762)이 추천할 만하다. 방금 무친 멸치회는 생각보다 부드럽고 고소하며, 고추장, 채소가 적절히 어우러지는 양념 멸치회는 입에 착착 붙는다. 또 멸치찌개의 진수를 만날 수 있는 곳이다.

주변 볼거리
영화<친구>촬영지 대변항 끄트머리에 수협 건물이 있고, 그 옆으로 길이 끝났다고 느낄 쯤에 작은 해안도로가 이어진다. 오른쪽으로 월드컵 축구공이 장식된 빨간 등대와 더불어 방파제가 보이는데, 영화 <친구>의 촬영지로 언덕배기에 안내판과 방파제 감상을 위한 벤치가 놓여 있다.
드라마 <드림>세트장 대변항 방파제에서 3.5km 정도 거리의 기장군 죽성리 어사암 부근에 이국적인 풍경의 작은 성당이 있다. 이는 드라마 <드림>의 촬영 세트장이던 기장 죽성성당으로, 그림 같은 경관이 일품이다.

글, 사진 이동미(여행작가)

저작권자 © 넥스트미디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