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 정조대왕이 누구야?”
화성 하루 여행의 시작은 아들의 질문에서 시작됐다. 세종대왕이나 주몽, 이성계 등은 책을 통해 익히 아는 인물. 한데 정조대왕이라니, 이름도 생소하고 왕과 얽힌 이야기는 어렵고 따분하다. 초등학교 3학년 아들의 사회 교과서 ‘우리 고장의 자랑거리’ 단원에 지역 축제로 화성문화제가 소개됐다. 여기서 나온 화성은 경기도 수원의 화성. 하지만 우리 가족은 수원시 화성 대신 경기도 화성시를 찾았다. 아들에게 수원의 화성문화제가 정조대왕이 아버지 사도세자와 어머니 혜경궁 홍씨를 향한 효심에서 비롯한 행사라고 하니, 그 부모님이 어찌 돌아가셨느냐고 묻는다. 사도세자가 부왕에게 미움을 산 사연,  뒤주에서 억울하게 죽은 사연 등을 이야기하다 보니 시작은 화성문화제였으나 결론은  정조대왕의 효심 따라잡기가 된 것이다.

하여 정조대왕의 부모님이 모셔진 융·건릉과 그 효심의 결정체로 지어진 용주사를 찾는 것으로 주말 여행지 낙점! 아들 덕분에 난생처음 경기도 화성시를 찾은 리포터. 집에서 두 시간, 떨어진 거리만큼 매력이 넘치는 곳이다.

서울 북쪽 끝자락에 는 리포터의 집에서 한강을 건너 경부고속도로를 타고 화성으로 향하는 거리는 생각보다 멀다. 김밥과 커피가 없었다면 아마 시작부터 우울했을지 모른다. 하지만 아이들은 엄마와 달리 지루한 줄 모르고 도심을 벗어나 초록이 우거진 차창 밖을 보는 것만으로 신이 나는 모양이다. 

효행박물관이 자리한 ‘용주사’    
우리 가족이 가장 먼저 도착한 곳은 경기도 화성시 송산동에 위치한 ‘용주사’. 사찰 입구 1km 전부터 오색 연등이 방문객을 맞는다. 그제야 석가탄신일이 얼마 남지 않았음을 알게 된 리포터. 이른 아침인데 사찰의 주차장은 벌써 빈자리가 없다. 건너편 공터에 주차하는 수밖에.

용주사는 유명세와 달리 아담하고 소박한 사찰이다. 사천왕문을 지나 매표소에 이르는 길과, 홍살문을 통과해 대웅보전에 다다르며 펼쳐지는 주변 풍경이 담백하다. 용주사는 신라 문성왕 16년에 갈양사로 창건된 곳. 고려 때 병란으로 소실된 빈터에 정조대왕이 보경스님의 <부모은중경>설법을 듣고 감동해 1790년에 새로 지었다. 대웅보전 낙성식 전날 밤 정조대왕이 꿈을 꾸었는데, 용이 여의주를 물고 승천하여 절 이름을 용주사로 지었다고.

사실 정조대왕은 ‘효자’의 대명사 아닌가. 용주사에는 정조대왕의  국보급 효심을 반영하듯 효행박물관이 자리한다. 정조대왕이 기증한 <부모은중경>부터 정조대왕의 친필 ‘봉불기복게(奉佛祈福偈)’, 김홍도의 사곡병풍 등 다양한 문화재가 전시되었다. 특히 부모의 은혜가 얼마나 크고 소중한지 구구절절이 써 내려간 <부모은중경>은  가장 감명 깊게 본 전시물. 자식을 위해 나쁜 일을 감당하는 은혜, 자식을 끝까지 불쌍히 여기고 감싸는 은혜는 이 시대 우리 부모의 사랑과 다르지 않다. 가슴 벅찬 마음으로 아이들에게 <부모은중경> 내용을 읽어주려는데 보이지 않는다. 엄마의 이야기를 귀담아듣지 않음에도 아이들이 마냥 사랑스러우니 리포터 역시 자식을 위해 끊임없이 희생하는 평범한 엄마인가 보다. 

세계문화유산 합장릉을 만나다 ‘융·건릉’
“진자리 마른자리 가려가며 키워놨더니 저 혼자 큰 줄 안다”는 친정엄마의 잔소리가 이명처럼 들린다. 철부지 남매에게 정조대왕의 효행을 설명하며 은근히 엄마와 아빠에게 효도하라고 설교했지만,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린다. 어쩌랴, 그래서 부모이고 자식인 것을….

용주사를 나와 5분 남짓 달려 도착한 곳은 ‘융·건릉’이다. 이곳은 세계문화유산으로 등록된 조선 왕릉 하나로, 합장릉이라는 특색이 있다. 사도세자와 혜경궁 홍씨가 합장된 무덤이 융릉, 정조대왕과 효의왕후가 묻힌 곳이 건릉이다. 역사적으로는 사도세자라는 비운의 인물로 기억되지만, 융릉에는 ‘장조’라는 이름이 있다.

차에서 돗자리를 꺼내 들고 시원한 물을 구입한 뒤 융·건릉을 찾았다. 조선 왕릉이 다 그렇듯 왕릉에 다다르기까지 관람객을 에워싼  소나무 숲길은 수묵화처럼 우아하고 정갈하다. 상쾌한 숲 향기를 가슴속 깊이 들이마시며 5분 남짓 걸으니 갈림길이 나온다. 왼쪽 건릉, 오른쪽 융릉이다. 찬물도 위아래가 있는 법. 우리는 정조대왕의 부모님이 묻힌 융릉을 먼저 찾았다. 합장릉이라고 해서 신라 시대 왕릉처럼 거대한 모양인 줄 알았는데, 언덕 푸른 잔디 위 무덤은 생각보다 크지 않다. 다만 융릉에는 왕릉에서 보기 드문 연못(곤신지)이 자리해 이색적이다.

“엄마, 무덤이 엄청 좋아요. 그런데 죽은 다음에 효도를 받는 게 무슨 소용이에요?”
“그래, 말 잘했다. 효도는 부모님 살아 계실 때 하는 거야. 하지만 정조대왕은 할아버지가 무서워서 효도를 하고 싶어도 할 수 없었으니 이해해야겠지?”
융릉을 배경으로 사진 하나 남기고 싶다는 아들. 엄마 입장에서는 효도하겠다는 ‘인증샷’쯤으로 여기고 싶다. 

융릉을 나와 건릉을 찾았다. 정조대왕의 애끓는 효심을 느낄 수는 없었으나, 부모님과 나란히 자리한 무덤을 보니 그의 효심은 죽어서도 이어지는 것이 아닌가 싶다.
화성 여행의 시작은 초등학교 3학년 아들의 사회 완전 학습이었지만, 아들은 사도세자와 정도대왕이라는 단어만 기억하는 듯해 엄마의 기대는 물 건너 간 듯하다. 도심을 벗어나 맑은 하늘을 보며 여유를 만끽했으니 그것만으로 좋은 엄마가 된 듯 뿌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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