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보공유와 혁신으로 생산성이 향상되면 충분한 경쟁력 확보”

박근혜 정부 출범 100일이 지났다. 박근혜 대통령은 취임초 대한민국의 새로운 성장 동력을 위해 중소기업 중심의 ‘창조경제’를 발표했다. 부처간에 ‘창조경제’에 대한 개념 정리가 덜됐다는 비판도 있지만 박근혜 정부는 경제 활성화를 위해 다양한 해법을 모색하고 있다. 이에 반해 박 대통령의 대표공약인 경제민주화는 재계가 관련 입법 수립에 반발하는 등 많은 진통을 겪고 있다.
한편, 지난해 협동조합 설립요건을 완화한 협동조합법이 개정되면서 협동조합에 대한 관심이 뜨겁다.  정부도 협동조합이 물가안정과 고용창출 등 경제적으로 긍정적인 역할을 담당하고 있다며 지원에 나서고 있다.
우리나라 대표적인 진보경제학자인 정태인 새로운사회를여는연구원 원장을 만나 박근혜 정부의 경제성적표와 현재 경제위기의 원인 및 진단, 해법을 들어보았다. <편집자주>

▲ 지난 참여정부에서 청와대 경제비서관을 지낸 정태인 원장(53세)은 우리나라 대표적인 FTA 반대론자다. 정 원장은 FTA로 국가 공공재가 미국기업에게 넘어갈 것이며 투자자 국가소송제(ISD)로 되찾아올 수도 없다고 말한다. 그 피해는 고스란히 국민들이 지게 될 것이라고 경고하고 있다. 최근에는 ‘협동의 경제학’을 펴내고 경제위기 극복 대안으로 협동조합과 같이 소규모 경제주체들의 활발한 생태계를 이루는 사회적 경제시스템을 제시하고 있다.

박근혜 정부의 경제 정책을 평가한다면?
박근혜 정부가 경제정책으로 박 대통령의 대표 공약인 경제민주화보다 ‘창조경제’를 내건 이유는 경제민주화를 모르기 때문이다. 사실 경제민주화는 간단하다. ‘1인1표’가 정치민주주의의 핵심이듯 경제민주화도 같다. 그런데, 주식회사는 ‘1주1표’다. 주식을 많이 보유한 사람이 기업을 지배하는 구조다. 그런데, 우리나라 재벌 총수들은 1% 안팎의 주식을 보유하면서도 ‘순환출자’라는 방식으로 대기업을 지배하고 있다. 주식회사 원리에도 맞지않다. 따라서 ‘기존순환출자’를 끊지 않고 경제민주화를 하겠다는 것은 나무에서 물고기를 잡겠다는 발상과 같다. 그나마 내놓은 창조경제는 정의조차 제대로 못 내리며 우왕좌왕하고 있다. 중소기업 중심의 창조경제 정책을 내놓았지만 내용에서 이전 정부와 크게 다를 바 없다. 정부는 이스라엘식 벤처 육성정책을 대표적인 ‘창조경제’ 정책이라고 말한다. 하지만, 이스라엘과 우리나라는 벤처 창업 토대가 근본적으로 다르다. 이스라엘은 미국 월가와 밀접하게 연결돼 있어 M&A를 염두에 두고 벤처를 창업한다. 그 나라는 국방정보분야에서 세계 최고 수준이다. 이스라엘이 소프트웨어 산업에서 세계적으로 뛰어난 이유다. 따라서, 군복무후 기술력을 바탕으로 창업한 벤처가 성공할 확률이 상당히 높은 편이다. 실리콘밸리도 마찬가지다. 실리콘밸리는 자유로운 분위기 속에 협력과 신뢰의 네트워크가 형성되어 있다. 때문에 기업간 계약도 복잡하지 않다. hp가 지금과 같은 세계적 벤처기업으로 클 수 있었던 이유도 이런 네트워크가 있었기 때문이다. hp역시  다른 벤처기업에게 시설물을 공동으로 이용하게 하는 등 협력 네트워크에 많은 도움을 주고 있다. 이처럼 벤처기업은 태생적으로 이런 자유로운 분위기의 네트워크가 없이는 숨쉴 수 조차 없다. 박근혜 정부는 이를 무시하고 새마을 운동처럼 ‘창조경제’를 밀어붙이고 있다. 밀어붙이는 ‘창조경제’가 어떻게 가능할 수 있겠는가? 정의조차 못내리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박 대통령은 공약으로 복지를 내걸었기 때문에 원칙을 중시하는(웃음) 그 분 성격으로 봐서 복지 정책을 밀어붙일 것이다. 복지는 증세를 하지 않고 달성할 수는 없다. 증세는 재벌 반발로 쉽지 않을 것이다. 재벌 반발에 부딪혀 복지마저 제대로 못하면 박 대통령으로서는 결국 남은 선택이 공공 부문 민영화다. 한전의 경우만 보더라도 자산 규모가 40~50조원에 이른다. 박 대통령이 유혹을 느낄만하다. 그리고 이를 목적으로 체결된 조약이 한미 FTA다. 공기업 민영화로 복지 재원을 마련해 당장은 국민들로부터 인기를 끌겠으나 결국 전기, 가스, 물 등 국민 생활에 필요한 공공재가 외국계에 팔리면서 그 피해는 고스란히 국민들에게 돌아간다.

▲ 정태인원장의 <협동의 경제학>
최근 '협동의 경제학'이란 책을 펴낸 걸로 알고 있다. ‘협동의 경제’란 무엇인가?
‘협동의 경제’는 중소기업·소상공인·협동조합 등 소규모 경제주체들이 신뢰속에 수평적으로 네트워크를 맺은 경제를 뜻한다. 시장만능을 주장하는 신자유주의자들은 인간이 이기적으로 행동하고 시장은 완벽하다고 말한다. 때문에 시장효율을 방해하는 장치를 없애면 자연스럽게 균형을 찾고 모든 사람들의 경제적 이해가 조정될 것이라고 주장한다. 하지만, 이는 사실이 아니다. 오히려 ‘공유지의 비극’(공공재가 사유화되면서 자원이 고갈되고 공동체가 붕괴할 수 있다는 이론-편집자)과 같은 일이 벌어지고 있다. 기후온난화의 경우가 대표적이다. 일산화탄소를 배출하면 지구기온이 올라가 인류 멸망에 처할 수 있는데 이기적 인간은 서로 상대방에게 온실가스를 줄이라고 요구한다. 결국 기후온난화로 인류는 공멸하게 되는 것이다. 이러한 사회적 딜레마를 해결하기 위한 대안이 ‘협동의 경제’다. 이탈리아 북부 에밀리아 로마냐주(州)에는 40만개의 영세기업들이 다양한 방식으로 네트워크를 이루고 있다. 기업들은 네트워크를 통해 ‘부가혁신’을 이루고 기술력을 높여 페라리, 람보르기니와 같은 세계적인 자동차와 제품들을 만들고 있다. 개별 영세기업이 정보를 공유해 경쟁력을 갖춘 덕분이다. 정운찬 전총리가 펼치고 있는 ‘동반성장’운동이 대기업과 하청기업간에 공정 거래와 성과 배분에 초점을 뒀다면 ‘협동의 경제’는 이처럼 영세기업과 협동조합, 소상공인들이 협력해 경제를 이룬다는 점에 초점을 두고 있다. 특히, 협동조합은 ‘1인1표’를 운영원리로 삼기 때문에 경제민주화에도 부합한다. 협동조합이 늘수록 우리나라 경제민주주의도 커진다. 에밀리아 로마냐처럼 중소기업 등 소규모 경제주체들이 네트워크를 형성해 사회적 경제 시스템을 갖춘다면 우리나라 경제는 질적으로 큰 발전을 이룰 수 있다.

20인 미만의 기업이 전체 제조기업의 70%를 넘고 있다. 독일은 60%, 일본은 55%로 우리나라보다 낮다. 또 나홀로 가구가 25%를 넘는 등 최근 ‘마이크로 경제’가 대세를 이루고 있다. 그결과 노동조합의 약화, 중소기업의 약화 등 여러 현상이 일어나고 있다. 어떻게 보는가?
예전처럼 규모가 크다고 좋은게 아니다. 마찬가지로 규모가 작다고 무조건 힘든 것은 아니다. 오히려 작은 기업들이 신뢰의 수평적 네트워크를 이뤄 협력해 살아나갈 수 있도록 지원해야 한다. 최근 정부는 벤처기업에서 중소기업과 중견기업, 대기업으로 성장하는 성장순환 생태계를 복원하겠다고 나섰지만 기대하기 힘들다. 지금처럼 재벌이 벤처 기업의 기술을 탈취하고 수요를 독점하는 상황에서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정부가 정말로 벤처기업들을 육성하겠다면 재벌을 규제하고 자유로운 환경을 이루어 내는 게 먼저다. 그 속에서 창조적인 아이디어가 나올 수 있도록 틈을 많이 만들어줘야 한다. 하지만, 대기업중심 경제는 효율성을 전제로 꽉 짜여진 시스템이기 때문에 창조적 아이디어가 나올 수 없다.

“박근혜 정부는 경제민주화가 무엇인지도 모르며 의지도 없어 … 중국처럼 내수중심으로 경제정책을 전환해야”

최근 KDI가 올해 성장률을 2%대로 낮춘 것에서 보듯 대내외 경제가 안좋다. 경제가 언제쯤 좋아질 것으로 보는가? 그리고 한국경제가 나아가야할 방향은?
적어도 향후 10년은 지금처럼 안좋을 것이다. 세계적으로 총수요가 이미 한계에 다다랐기 때문이다. 중국은 이를 내다보고 시진핑 주석이 중국 내수 시장을 키우겠다고 나섰다. 우리나라도 내수 중심으로 경제정책을 전환해야 한다. 내수를 키우려면 근로자 임금을 늘리고 중소기업 생산성을 늘리고 협동조합과 같은 사회적 경제를 키우면 된다. 대기업은 수출로 돈이 벌었으나 내수 진작을 위한 투자를 하지 않고 있다. 대기업이 중소기업과 정상적인 거래로 돈을 많이 풀면 중소기업은 자연스럽게 근로자 임금을 많이 줄 수 있고 채용을 늘리게 된다. 또 지금처럼 2%의 성장률이 지속되면 자영업은 다 망한다고 보면 된다. 자영업 붕괴는 가계부채가 터지는 것으로 이어진다. 예전처럼 빚을 늘려 내수를 늘릴 수 없는 이유다. 또 중국과 격차를 유지하는 전략도 필요하다. 아직은 우리나라가 중국과 5년가량 기술격차를 유지하고 있다. 이 격차를 유지하려면 원천기술 확보전략으로 국가 R&D 정책을 바꿔 나가야 한다. 원천기술은 중소기업이 담당하는 분야다. 이를 응용한 상품화는 대기업이 맡으면 세계적으로 살아남을 수 있다고 본다. 이것도 협업과 협력적 경제에서 가능하다. 대기업끼리 협업 시스템을 만드는 것도 중요하다. 삼성의 반도체 기술과 현대의 자동차 기술이 결합된다고 상상해 보라. 매우 큰 시너지가 발생할 것이다. 문제는 대기업이 이런 협업에 익숙치 않다는 것이다. 마지막으로 그동안 소홀했던  제조업 육성에 나서야 한다. 제조업없이 고용을 늘릴 수 없다. 특히, 예전처럼 기계산업 육성에 나서야 한다. 기계산업은 연관산업 유발효과도 높고 원천기술 확보에도 유리하다. 독일과 일본이 2차 대전으로 패망했음에도 세계적 경제 국가로 다시 일어설 수 있었던 것도 기계산업이 발달해 있었기 때문이다. 우리가 그들처럼 제조업과 기계산업이 강해지려면 지방 산업도시를 지역단위의 산-학-연 클러스터로 만들어야 한다. 예전에 미국 산호세 대학을 갔더니 대학교수들과 기업 연구원들이 모여 저녁마다 세미나를 진행하고 있더라. 지역의 특화된 산업별로 공정개선과 제품 개발을 위한 의견을 교환하는 모습에 깊은 인상을 받았다. 이처럼 우리나라도 지방대학들이 지역 기업과 머리를 맛대고 공정혁신과 기술개발에 나선다면 어느 나라에도 뒤지지 않을 경쟁력을 갖출 수 있다.

대담·정리=김준현 기자 jhkim@gamtantimes.com

저작권자 © 넥스트미디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