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시 중구 신당동에 가면 골목길 양편에 떡볶이 집이 줄지어 있다. 그곳에서 떡볶이를 먹으며 음악을 들었고, 옆 테이블의 이성에게 곁눈질해가며 친구들과 우정을 쌓았다. 결혼해서 낳은 아이들이 그때만큼 자랐으니 신당동은 대 이어 찾는 곳이다.
글·사진 이동미(여행 작가)

 
궁중에서 먹던 음식
지금은 길거리 음식이 된 떡볶이, 도대체 언제부터 먹었을까? 알고 보니 떡볶이는 유서 깊은 궁중 음식이다. 궁중에서 정월에 먹던 요리 중 지금까지 전해오는 것이 잡채와 떡볶이다.

먼저 잡채를 살펴보자. 조선 시대 이충이라는 사람이 채소에 갖은 양념을 해서 볶아 먹으니 그 맛이 좋아 임금님께 진상했단다. 임금 또한 그 맛에 반해 이충에게 호조판서까지 내렸다니 믿거나 말거나. 그때의 잡채에 당면만 추가하면 지금의 잡채와 다르지 않다.

하지만 떡볶이는 모양새가 많이 달라졌다. 당시 떡볶이는 쇠고기를 넣고 간장 양념을 한 궁중 요리다. 밥해 먹을 쌀도 귀한 시절에 쌀로 만든 떡은 잔치 때나 마주할 귀한 음식이었는데, 그 떡에 쇠고기까지 곁들여 만든 떡볶이는 정말 임금님이나 드시던 귀한 음식이었다. 필자도 가끔 맵지 않은 간장 떡볶이를 만들어 먹는데, 그러고 보니 임금님과 동격이었던 셈이다.

도대체 떡볶이는 언제부터?
지금의 떡볶이와 비슷한 메뉴는 1950년대부터 생겼다. 연탄불에 보글보글 끓였는데 1970년대에 그 수가 늘었다. 그러던 어느 날 MBC 라디오 프로그램 <임국희의 여성 살롱>에서 신당동 떡볶이 집을 소개하면서 입소문이 났다.

사람들이 몰리면서 새로운 문화가 생겼으니, 지금은 사라진 ‘바보들’이란 떡볶이 집에서 뮤직 박스와 DJ가 선보인 것이다. 떡볶이를 먹으며 자신이 좋아하는 노래를 신청해 듣는다… 참으로 낭만적인 발상이다. 당시 뮤직 박스와 DJ는 대단한 인기여서 너도나도 뮤직 박스를 만들었다. 음악에 해박한 지식과 좌중을 들었다 놨다 하는 카리스마, 서비스도 팍팍 줄 수 있는 DJ는 도끼 빗을 뒷주머니에 꽂고 느끼한 어조로 음악을 소개했다. 그 모습에 반한 여학생들이 몰려들었고 여학생을 보기 위해 남학생들이 모여들었으니, 청춘 남녀와 음악이 넘치고 맛난 먹거리가 기다리는 떡볶이 집은 젊음의 해방구다.

신당동 떡볶이의 매력
대한민국 길거리 어디서나 만날 수 있는 것이 떡볶이인데, 떡볶이의 자존심 격인 신당동은 무엇이 다를까? 길거리 떡볶이는 조리된 상태로 손님을 기다리는 반면, 신당동은 프라이팬에 떡과 함께 쫄면, 삶은 달걀, 만두, 어묵 등을 푸짐하게 넣고 끓여 먹는 즉석 떡볶이 형태다. 또 떡볶이에 넣을 부재료를 직접 선택할 수 있다. 양이 많고 맛난데다 값이 저렴하니 용돈이 부족한 학생들에게는 큰 인기를 누린 것은 당연한 일이다.

신당동 떡볶이 골목은 90년대 중반까지만 해도 젊은이들의 대표적인 간식 상권이었다. 햄버거나 피자 같은 인스턴트식품이 등장하면서 급속히 쇠락의 길을 걸었지만, 예전의 명성을 어느 정도는 지키는 신당동은 여전히 그 위세가 대단하다.

한국전쟁 이후 너나없이 먹을 것이 부족한 시절, 고추장 양념을 이용한 떡볶이를 국내 최초로 개발한 원조 떡볶이 집을 위시해 줄줄이 늘어선 떡볶이 집들은 세월 따라 연탄불이 LPG를 거쳐 휴대용가스레인지로 바뀌고, 각종 부재료(사리)가 등장해 떡볶이라 부르기엔 쑥스러울 정도로 떡이 적고 부재료가 많이 들어간다. 세월의 흐름 때문에 재미난 이야기도 있으니 짜장 떡볶이가 그러하다. 짜장면이 세상에서 제일 맛있는 음식이던 시절, 짜장 떡볶이가 인기였으니 짜장 소스가 들어가면 무조건 맛있다는 생각 때문이었다고.

눈물 흘리며 먹는 떡볶이의 추억
이제 신당동에는 퓨전 떡볶이도 있다. 소규모 떡볶이 가게들이 힘을 합해 탄생한 ‘아이러브 신당동’은 인테리어를 바꾸고 넓은 주차 공간을 만들었다. 경영전략도 전면 수정했으니 아줌마 종업원을 10~20대 초반 청년으로 교체했고, 최신 팝송 등 신청곡을 틀어주는 DJ 박스도 부활했다. 특히 올빼미 족 젊은이들을 겨냥해 24시간 영업 체제로 전환했고 메뉴도 혁신했다. 떡이나 삶은 달걀, 어묵, 라면 세트 일색이던 메뉴를 ‘궁중 떡볶이(불고기와 당면 추가)’ ‘김치 떡볶이’ ‘치즈 떡볶이’ 등으로 다양화했다. 김밥과 우동, 순대, 생과일 주스, 맥주, 양주 등 다른 먹거리도 판매한다.

매일 새벽 방앗간에서 뽑는 떡은 밀가루와 쌀의 비율이 2:8, 100% 쌀떡은 힘이 없어 쫀득한 맛을 낼 수 없기 때문. 떡 지름은 1.5~2cm정도로, 튀김만두는 익히기 전에 건져서 접시에 꺼내놓는다. 떡볶이 국물이 우러났을 때 국물에 찍어 먹으면 바삭한 맛이 일품이다. 물론 몇 개는 퍼진 맛으로 먹기도 한다. 그러다 가끔 ‘눈물 떡볶이’도 먹는다. 뭔가 마음이 상해 울고 싶을 때 맵디매운 떡볶이를 핑계 삼아 펑펑 운다. 눈물 콧물 훔치며 달착지근한 아이스크림을 후식으로 먹고 미소 지으니 이것이 오늘날 신당동 떡볶이 골목의 모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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