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에서 학력 수준이 가장 높다는 보스턴. 그래서인지 미국의 다른 도시들과 달리 고풍스럽고 점잖은 매력이 있는 곳이다. 리포터의 가족이 몇 년을 머물다 한국으로 돌아온 지 1년 만에 다시 찾은 보스턴은 여전히 화려하지도, 소란스럽지도 않게 자신이 할 일을 묵묵히 해내고 있었다.

1620년 신앙의 자유를 찾아 신대륙으로 향한 메이플라워호, 미국독립혁명의 시발점이 된 보스턴차사건(Boston Tea Party) 등 미국 역사의 주요한 출발점은 보스턴인 경우가 많다. 영국에서 독립선언을 한 지 240여 년이 채 되지 않는 미국이지만, 그들은 자국의 역사를 사랑하고 자랑스러워한다. 그래서 보스턴은 미국인에게 자부심과도 같은 특별한 도시다.

미국독립혁명 역사의 현장, 보스턴 시내
18세기 중엽 영국은 과다한 제국의 팽창과 오랜 전쟁으로 재정난을 겪자, 식민지에 차례로 세금을 부과했다. 이에 “(영국 의회에 자신들의) 대표 없이는 세금도 없다”며 미국인들이 반발하기 시작했다. 동인도회사의 차(tea) 무역에 대한 독점과 과다한 세금에 보스턴 시민들의 불만이 폭발하고, ‘올드 사우스 집회소(Old South Meeting House)’에서 항거를 위한 비밀 집회가 열린다. 결국 항구에 정박 중이던 선박을 습격해 차 상자 342개를 모조리 바다로 던지는 사건이 일어난다. 이로 인해 영국군이 주둔하고 탄압이 강화되자, 결국 미국독립혁명이 일어난다. 보스턴 차 사건을 기념해 보스턴 항구에는 ‘티 파티 박물관(Tea Party Museum)’이 세워져 있다.

보스턴에서 가장 오래된 교회인 ‘올드 노스 교회(Old North Church)’는 미국독립혁명 당시 가장 높은 건물로, 14층 높이의 첨탑에 등불을 밝혀 영국군이 공격한다는 신호를 준 곳이다. 이에 폴 리비어가 밤새 말을 타고 달리며 영국군의 침공 사실을 알렸고, 렉싱턴·콩코드의 싸움에서 대승한다. 이런 폴 리비어의 행적과 미국 민병의 승리를 기리고자 1897년 보스턴마라톤이 시작됐다. 우리나라 선수로는 1947년 서윤복이 출전해 대회 신기록을 세우며 우승했고, 2001년 대회에선 이봉주가 그 뒤를 이었다.

뉴욕 시내에 센트럴파크가 있다면, 보스턴 시내엔 ‘보스턴 코먼’이 있다. 1634년 문을 연 미국 최초의 공원인 보스턴 코먼은 초기에는 소를 키우는 방목장이었다. 미국독립혁명 당시에는 영국군의 캠프로 사용됐다. 이후 노예제 반대 운동, 반전 시위 등 주요 연설과 집회가 열리는 장소로 이용됐고, 현재는 시민을 위한 도심 속 공원으로 사랑받는다. 역사가 오래된 만큼 숲이 울창하며, 1947년부터 운행된 회전목마가 있고 겨울이면 개구리 연못(Frog Pond)에서 스케이팅을 즐길 수 있다.

 최고의 교육과 의료를 충족하다, 하버드대학교
하버드대학교가 없는 보스턴을 상상할 수 있을까? 하버드대학과 그 부속병원들, MIT(매사추세츠공과대학)는 보스턴의 경제를 지탱하는 든든한 버팀목이다. 전 세계인이 최고의 교육·의료 시설을 찾아 이곳으로 모이다 보니 2008년 미국 금융 위기 때도 보스턴의 부동산 시장은 큰 변동을 겪지 않았다.

하버드대학은 보스턴을 가로지르는 찰스강 북쪽의 케임브리지 지역에 있다. 미국 최초의 대학이기도 한 하버드대학은 처음에는 목사를 양성하기 위한 신학교였다. 영국인 목사 존 하버드가 젊은 나이에 사망하면서 그가 남긴 책 400여 권과 재산의 절반이 대학에 기증된 후 그의 이름을 따 하버드대학이라 불렀다. 오늘날 관광객들은 존 하버드 동상의 발을 만지면 하버드에 들어올 수 있다는 속설 때문에 줄을 지어 기념사진을 찍어 동상의 발만 번쩍번쩍한다.

그러나 하버드에서 일하는 미국인 친구가 말하기를 하버드에 얽힌 세 가지 잘못된 믿음이 있다고. 첫째는 동상에 새겨진 이는 실제 하버드의 모습과 아무 상관이 없고, 둘째 그는 대학이 아니라 도서관을 기증한 것이다. 셋째, 하버드에 들어온 학생 중에는 하버드 동상의 발을 만져본 사람이 거의 없다니 믿거나 말거나다.

메이플라워호의 초기 정착민을 만나다, 플리머스 농장
보스턴에서 한 시간 거리에는 1620년 메이플라워호를 타고 종교의 자유를 향해 아메리카 대륙으로 향한 필그림 파더스(Pilgrim Fathers)들이 처음 정착한 플리머스가 있다. 원래 버지니아로 향한 이들은 폭풍우에 밀려 매사추세츠에 도착한다. 65일 동안 열악한 환경에서 대서양을 뚫고 온 102명이 이곳에 새로운 꿈을 일구었지만, 추운 날씨와 병을 이기지 못해 절반 이상이 죽었다. 어려움을 겪는 이주민을 도운 것은 현지에 살던 아메리칸인디언. 옥수수 농사와 물고기 잡는 법을 가르쳐주고, 가을에 수확이 성공하자 함께 추수 감사를 했다. 이를 기념하기 위해 플리머스 농장(Plimoth Plantation)이 운영되고 있으며, 이곳에서는 초기 정착민과 아메리칸인디언의 생활 모습 그리고 원형을 복원한 메이플라워 2호를 볼 수 있다. ‘1627년 영국 마을’과 ‘왐파노아그 인디언 주거지’에서는 당시 복장을 입은 사람들이 농사를 짓고 칠면조를 구우며 생활용품을 만드는 모습을 관찰하고 체험할 수 있다.

글·사진 김정선 리포터 suninjune1@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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