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학이면 안동을 찾는 가족 여행객이 부쩍 는다. 한국 정신문화의 수도이자 물돌이가 예쁜 하회마을을 둘러보고, 헛제사밥과 안동 간고등어를 먹는다. 여기에 빠질 수 없는 것이 안동찜닭. 안동이란 이름을 품은 안동의 대표 먹거리가 매력적이다.
글·사진 이동미(여행 작가)

 
뚝딱뚝딱~ 몇 년 전 안동 구시장 찜닭 골목을 처음 찾았을 때 적잖이 놀랐다. 멀리서부터 들리는 소리가 심상치 않았다. 전국 바둑 대회 때 들은 수십만 개의 바둑돌 두는 소리와 흡사하다. 특별한 공연이나 효과음인지 종잡을 수 없는 소리는 찜닭 집이 가까워질수록 더해지니, 찜닭 집 주방 앞에 도착해서야 그 의문과 비밀이 풀렸다.

필자가 찜닭 골목을 찾은 시간은 재료를 준비하고 다듬는 시간. 골목의 수많은 찜닭 집에서 무를 썰고 있었다. 치킨을 주문하면 서비스로 제공되는 하얀 무를 직접 만드니 무 써는 소리가 그리 요란했던 것. 그만큼 찜닭 집들이 옹기종기 모여 있다. 그중 넉넉한 미소의 아주머니와 눈길이 마주쳐 그 집으로 들어갔다.

좁은 실내는 이미 꽉 차 2층으로 안내되었다. 공간은 한정되었는데 몰려드는 사람이 많아 다락방을 손님의 자리로 내준 게 그 계기. 아슬아슬 급경사에 한 사람이 겨우 올라갈 수 있는 사다리를 타고 오르면 허리를 펼 수 없이 낮은 다락방에 테이블 두세 개가 있고, 벽에는 낙서가 가득하다. 조금 기다리니 쟁반만 한 접시에 안동찜닭이 푸짐하게 올라온다. 주재료인 닭고기에 당면과 채소를 넣고 간장 물엿 등으로 양념한 안동찜닭은 짭짤하고 달콤했다. 게다가 칼칼한 매운맛이 강한 중독성이 있다.

안동찜닭의 숨겨진 이야기
그렇게 찾은 안동찜닭 골목은 정겹다. 맛난 냄새에 이끌려 안동찜닭 골목에 발을 들이면 훅 하며 달려드는 열기와 찜닭 볶는 소리가 요란하다. 반가이 인사를 나누고 오물오물 맛난 안동찜닭을 먹으면 안동찜닭이 어떻게 생겨났는지 궁금해진다. 한마디 툭 던지니 30년째 이 골목에서 찜닭 집을 운영하는 주인아주머니가 옆자리에 앉아 두런두런 이야기를 풀어놓는다.

구시장 한편에 ‘우리통닭’이 처음 문을 열었다고. 생닭을 통째로 기름 솥에 넣어서 튀긴 ‘통닭’은 이곳 재래시장의 인기 품목이 되어 닭 집이 늘어났다. 당시 생닭 한 마리가 1천500원, 통닭이 2천500원이었다.

1980년대 안동에는 36사단이 자리했는데 면회 가는 사람들에겐 통닭이 필수였고, 휴가 받은 군인들은 너도나도 이곳 시장의 통닭을 찾았다. 36사단이 원주로 이전한 뒤 안동교육대학, 상지대, 인근 고등학교 학생과 방위병들이 그 자리를 대신했다. 이들은 여유가 있어 가게 안 자리에 앉아 닭볶음탕이나 닭찜을 먹었다. 그런데 대부분 주머니가 가벼운 사람들인지라 저렴한 가격에 양은 푸짐하기를 바랐다고. 해서 당면과 채소를 넣어 양을 늘리면서 고춧가루로 먹음직스럽게 찜닭을 만들어 제공했다. 한때는 고춧가루가 지저분해 보여 청양고추와 마른 고추로 매운맛을 대신해보았지만 실패. 중국식 춘장을 넣기도 했다고.

제대로 된 영양식 안동찜닭
여기까지가 찜닭 집 아주머니가 들려준 안동찜닭 골목의 생생한 역사다. 그러고 보니 닭은 우리 식생활에 친구 같은 존재다. 여름철이 되면 하루쯤 날 잡아 가까운 사람들끼리 모여 계곡물에 발을 담그고 나무 밑에 둘러앉아 닭을 삶아 먹으며 더위를 보냈다. 또 우리네 장모님들은 백년손님인 사위가 오면 씨암탉을 푹 고아 먹였다. 친근하면서도 보신용으로 으뜸인 것이 바로 닭이다. 그런데 알고 보니 우리나라 닭이 유난히 맛있고 영양이 좋다고 한다. 조선 중종 때 명나라 사신이 조선에 오면 정력에 좋은 ‘계관육(鷄冠肉)’을 대접했는데, 이 계관육을 먹은 사신은 아무리 언짢은 일이 있어도 입이 금방 함박만 해졌다고 한다.

허준의 <동의보감>에도 허약한 것을 보호하는 데 좋기 때문에 식사요법에 많이 쓴다고 적혀 있다. 닭은 수분과 단백질, 지방이 적당히 구성되었는데 내장이나 껍질에도 단백질 지방 비타민 등이 풍부하다. 게다가 안동찜닭에는 연하고 부드러운 닭고기에 감자와 당면, 양파, 말린 청양고추, 양배추, 당근, 마늘, 대파, 간장, 물엿, 캐러멜 소스 등 많은 재료가 들어가니 그야말로 영양식이다. 또 큰 접시에 푸짐하게 담기니 머리를 맞대고 어울려 먹는 서민적이고 대중적인 음식이다.

부자들의 음식 안동찜닭
안동찜닭이 예전에는 부자들 음식이었다는 얘기도 있다. 안동 시내를 걷다 보면 옛 안동읍성의 흔적을 지난다. 서울에 한양성곽이 있고 전주에 전주부성이 있듯 안동에는 안동읍성이 있었다. 고려 우왕 6년(1380) 왜구가 몰려들자, 영남산 끝자락과 낙동강 사이 평지인 안동 읍내를 중심으로 안동읍성을 쌓았다. 돌로 성곽을 쌓으며 동서남북에 4대문을 내었고 안쪽에 관아 시설인 동헌 객사 향청, 제사 시설인 사직단 문묘를 갖추었으며, 밖으로 해자(垓子)를 두었다. 현재도 안동읍성의 북문, 서문, 남문의 지명 흔적들이 남아 있고, 안동찜닭 골목이 있는 구시장은 남문동 거리를 지나 들어간다.

시간이 흐르면서 성안에 사는 사람들과 성 밖에 사는 사람들이 자연스레 구분되었다. 성 안쪽은 ‘안동네(內村)’로 불리며 관아와 관련 있는 사람과 금전적인 여유가 있는 사람들이 살아 부촌으로 불리고, 바깥 동네에는 서민들이 살았다. 성안에서는 행사와 사교 모임, 집안일이 많았는데 부촌인 안동네에서 특별한 날 해 먹던 찜닭을 바깥 동네 사람들이 ‘안동네 찜닭’이라 불렀다고 한다. 당시 해 먹던 안동네 찜닭의 형태가 어떠했는지, 정말로 안동찜닭이 안동네 찜닭에서 유래했는지는 모를 일이다.

그 후 안동읍성은 일제에 의해 강제 철거되어 성곽과 문들은 흔적도 없이 사라지고, 동네 이름과 표지석만 남았다. 이름의 유래가 어찌 되었든 안동찜닭은 맛있다. 예전에는 돈 많은 사람들이 먹었을지 몰라도 이제는 안동 구시장 골목에서 안동 시민은 물론이고 타지방에서 온 많은 사람들이 찜닭을 먹는다. 필자가 안동찜닭을 먹던 가게의 다락방은 추억으로 사라졌지만, 안동 찜닭 골목의 분위기와 맛은 여전하다.

이번 여름방학에는 아이들과 안동으로 여행을 가보는 것은 어떨는지. 하회마을에서 역사 체험을 하고 안동 구시장에서 여름 보양식으로 안동찜닭을 즐기는 여행을 추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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