급수탑

거뭇거뭇 때가 탄 흰 탑 앞에는‘대한민국 근대 문화유산’이라는작은푯말이있다.예부터원주가 강원내륙의중심도시이자 교통의 요지였음을 확인할 수 있다.

세월과 역사의 흔적이 느껴지는 급수탑과 강원감영 터
교통이 발달한 원주의 원주역은 중앙선 모든 열차가 멈추는 주요 역이다. 30년 넘게 한자리를 지켜온 탓일까. 예전의 명성은 간데없고 빛바랜 승강장에서 세월의 흔적이 느껴진다. 1980년대 풍경을 보는 듯한 원주역 대합실 한쪽 벽에서 원주역의 역사를 읽을 수 있다. 그중 세 번째 소개된 곳이 원주역 광장에 자리한 급수탑.
 
“엄마, 이거 바다에 있는 등대 아니에요?” 높이 18m 콘크리트 탑 앞에 서니 아이 말처럼 그 모양이 딱 등대를 연상케 한다. 이 탑은 1940년 청량리에서 원주까지 중앙선이 개통되면서 지어진 증기기관차 급수 시설. 용도를 설명해주니 그제야 아이가 고개를 끄덕인다.
 
“이 철도로 하얀 연기를 뿜어내는 증기기관차가 다녔다는 거죠?” 청량리역에서 출발해 원주역에 도착한 뒤 급수를 하던 당시의 증기기관차 모습을 떠올려본다.
 
원주역에서 차로 5분 정도 달려가 도착한 곳은 원주 중앙시장. 서울로 치면 명동 옆에 있는 남대문시장처럼 골목골목 숨은 맛집이 많다. 원주의 전통시장이지만 ‘차 없는 문화·예술의 거리’로 지정되면서 퍼포먼스와 각종 공연, 전시 등이 열린다.
 
이곳 중앙시장에서도 근대 문화유산을 만날 수 있으니, 일제강점기 건축물 형태를 짐작해볼 수 있는 조선 식산은행 원주 지점 건물. 어디서 많이 들어본 듯한 조선 식산은행. 학창 시절 국사 시간에 배운 기억이 가물가물하다.

조선식산은행

근대문물의수용과일상생활의변화조선 식산은행은 1918년 10월, 일본이 산업 개발 자금을 원활하게 마련하기 위해 설립한 특수은행. 광복 이후 한국식산은행이 되었다가 1952년에 한국산업은행에 흡수됐다.

1934년에 지어진 이 건물은 하얀색 외관의 단층 구조로 원주에서 유일하게 볼 수 있는 일제강점기의 근대식 건축물. 원주에 맨 처음 생긴 은행 건물로, 지금은 SC제일은행 원주 지점으로 쓰인다. 은행 건물 감상이 끝날 때쯤 아이가  바닥에 그려진 게 뭐냐고 묻는다. 다가가 살펴보니 옛 강원감영의 모습이 타일로 표현되었다.
 
“래원아! 이 거리가 옛날에 관아 건물이 있던 곳이래. 그래서 당시의 모습을 이렇게 그려놓은 거야. 지금의 읍면동처럼 당시엔 부, 목, 군, 현이라는 이름으로 지방행정조직이 나뉘어져 있었다나봐.”
강원 감영은 원래 조선시대 강원도의 26개 부, 목, 군, 현을 관할하던 강원도 지방 행정의 중심지다. 조선 태조 4년(1395)에 설치되어 약 500년 동안 강원도의 정청(政廳) 업무를 수행한 곳. 원주시청 관광과 이선희 주무관은 “강원도는 조선  팔도 중 한양과 가까워 도내를 순찰하면서 임무를 수행하는 데 이점이 많은 지역이었다”고 설명한다.
 
토지 박경리 선생과 함께 떠나는 문학의 향기
원주 하면 떠오르는 인물은 고 박경리 선생이다. 반체제 저항시인 김지하 시인이 목포에서 이사 와 원주중학교를 졸업했지만, 누구보다 원주를 빛낸 문인으론 박경리 선생을 꼽는다. 원주의 도심인 단구동에 박경리문학공원이 조성되었다. 박경리 선생의 옛집에 그를 기리는 문학공원을 만들고 전시실도 갖췄다. 공원 곳곳에 아기자기한 호수와 조경이 잘 꾸며져 문학과 자연을 함께 누릴 수 있는 힐링 공간이다.

▲ 박경리문학공원

태어난 곳은 경남 통영이지만 26년에 걸친 <토지 >집필의 대장정을 이곳 원주집에서 마쳤다. 선생이 작품에 몰두하다 거닐었을 뜰 앞에는 선생의 동상이 있다.

 
문학의 향기를 뒤로하고 간이역의 로망을 찾아 반곡역으로 향했다. 지금은 기차가 서지 않는 반곡역은 1934년 지어져 수많은 기차와 사람들이 오가던 곳. 2005년 무정차 역으로 바뀌면서 역사 대합실을 반곡갤러리로 새롭게 꾸몄다.
 
“구경 오셨어요?” 따뜻한 미소가 인상적인 역장님이 먼저 인사를 건넨다. 역장님의 안내를 받아 갤러리에 들어서니 깔끔하고 정갈한 내부가 한눈에 들어온다. 갤러리에서 반곡역의 역사와 관련된 그림과 사진을 감상하고 역사 앞으로 나왔다.
 

▲ 반곡역

외세의침략과조선의개항

일제강점기 광산·농산·임산 개발을 목적으로 중앙선에 지은 역사(驛舍)다. 박공 지붕이 유난히 높고 철도 쪽 지붕은 주 지붕의 처마를 연장해 비를 피하도록 한 것이 특징.

“엄마, 여기에도 아까 본 것과 똑같은 푯말이 있어요.”
 
원주역의 급수탑과 중앙시장의 조선 식산은행 건물처럼 이곳 반곡역도 일제강점기의 건축양식을 잘 보존하여 대한민국 근대 문화유산으로 지정되었다. 봄에는 벚나무가 화사하고, 가을에는 단풍이 운치 있다니 아이와 함께 때맞춰 한 번 더 오기로 약속했다.
 
고려시대 융성한 불교문화를 확인할 수 있는 법천사지
강원도 하면 빼놓을 수 없는 먹거리 감자. 일찍 개항(開港)한 일본은 우리보다 200년이나 앞서 네덜란드 사람들에게서 감자를 들여왔지만, 우리나라에서 감자가 재배된 것은 1820년대부터다.
 
“감자가 우리나라에 어떻게 들어왔는지 아니? 인삼 서리를 하러 몰래 들어온 청나라 사람들이 들여온 것이라는 얘기도 있고, 전라도 해안의 영국 상선에 타고 있던 선교사들이 종자를 주었다는 애기도 전해진대.” 
 
감자를 좋아하지 않아서인지 아이 반응이 시큰둥하다. 반면 우리나라에 고구마가 들어온 얘길 꺼내자 관심을 보인다. 고구마에 관한 기록은 역사적으로 명료하다. 조선 후기 문신인 문익공 조엄 선생이 영조 39년(1763) 통신사로 일본에 가서 고구마 종자를 가져와 우리나라 최초로 고구마 재배에 성공했다. 생각난 참에 그 길로 원주 지정면 간현리에 있는 조엄 선생의 묘역을 찾았다.
 
역사적으로 원주에는 불교의 흔적을 찾을 수 있는 유적이 많다. 가장 대표적인 곳이 부론면에 있는 법천사지. 49번 국도를 타고 남한강을 왼쪽에 두고 가다 보면 고즈넉한 법천사지를 만날 수 있다.
 
입구부터 건너다보이는 마을까지 다 절터라니 법천사가 번성할 당시의 규모를 짐작하고도 남는다. 임진왜란으로 법천사가 불타기 전에는 조선 초기의  권람, 한명회, 서거정 같은 학자들이 이곳에서 시를 읽고 시문을 남겼다고 전해진다.

▲ 법천사지

불교의 영향과 고려 사람들고려 문종 24년에 이 절에서 입적한 지광국사의 사리탑인 지광 국사탑이 비와 함께 있었는데, 탑은 경복궁으로 옮겨지고 답비만이 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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